2022년 8월 1일 월요일

백석

 

  • 고향(故鄕)[34]
    고향

    나는 북관(北關)[35]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36]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37]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38] 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씨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39]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 탕약(湯藥)
    탕약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로[40] 우에 곱돌탕관[41]에 약이 끓는다
    [42]에 숙변[43]에 목단[44]에 백복령[45]
    산약[46]에 택사[47]의 몸을 보[48]한다는 六味湯[49]이다.
    약탕관에서는 김이 오르며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가 나고
    약이 끊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그리고 다 달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야 萬年 옛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손으로 고히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옛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맑아진다.
  • 고독
  • 수라
  • 국수
  • 개구리네 한솥밥 : 한국전쟁 이후 아동문학에 천착하면서 쓴 동화시 중 하나. 초등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 오리

5. 백석과 윤동주[편집]

당시  1필이 5원이었는데, 백석의 시집 <사슴>이 2원 정도였다고 한다. 1936년 1월 100부 한정 판매를 하였는데, 시인 윤동주는 이 책을 구하지 못해 연희전문학교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이 시집을 베껴 썼고, 그 필사본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 한다.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와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을 살펴보면 윤동주가 백석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50] 그리고 흰 당나귀는 백석과 윤동주 모두 좋아하는 이미지인데, 이는 두 시인의 시에서 담은 시인 프랑시스 잠이 좋아하는 이미지라 한다.
두 작품을 한번 비교해보자.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 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 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별 헤는 밤
윤동주

季節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來日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靑春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追憶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憧憬동경과
별 하나에 詩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小學校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佩패, 鏡경, 玉옥 이런 異國少女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詩人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北間島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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