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모들은 아이를 사랑해서 사교육을 시킨다고 말한다.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진심으로 자녀를 위한다. 문제는 사랑이 무지에서 기인된 불안과 결합하는 순간이다. "나만 안 시키면 뒤처진다." "지금 안 하면 늦는다." "남들은 다 한다." 이런 공포가 부모들을 움직인다. 사교육 산업은 그 불안을 먹고 자란다. 한국 학원 거의 대부분은 교육기관이 아니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상품 판매에 몰두하는 거대한 시장이다. 자본주의 시장은 늘 새로운 불안을 만들어낸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영어를 끝내야 한다고 말하고, 초등학교 때 중학교 과정을 해야 한다고 말하며, 중학생에게는 고등학교 과정을 요구한다.
안타깝게도 이 경쟁에는 결승선이 없다. 한국 교육의 가장 비극적인 부분은 여기 있다.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에 재능이 있는지, 어떤 인간으로 성장하고 싶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달리는가이다. 방향보다 속도가 중요해진 사회다. 그 결과는 이미 통계가 보여주고 있다. 한국 청소년들은 학업 스트레스를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로 꼽는다. 수면 시간은 세계 최하위권이며 행복도는 낮다. 대학 입시가 끝나도 경쟁은 끝나지 않는다. 취업 경쟁이 기다리고 있고, 직장에서는 또 다른 경쟁이 시작된다. 어린 시절부터 내면화된 비교와 불안은 성인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청소년 자살률이 늘 세계 1위를 유지하는 이 끔찍한 상황이 어디서 비롯된 것이까? 더 심각한 문제는 많은 무지한 사람들이 이것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가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을 대견하게 여기고, 놀이터보다 학원을 더 자주 가는 것을 성실함으로 평가한다. 쉬는 아이를 걱정하고, 노는 아이를 불안하게 바라본다. 인간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키우는 것 같은 시선이다. 스벅에서 엄마와 어린아이가 앉아서 아이가 책을 읽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범죄에 가까운 아동학대인데도 엄마는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를 보고 있다. 공포스러운 장면이었다. 교육은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작업이어야 한다. 세상을 이해하게 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쟁 중심 교육은 언제나 철저히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아이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기보다 도살장으로 보내는 소처럼 하나의 좁은 길로 몰아넣는다. 성공의 기준도 획일적이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높은 연봉. 그 바깥의 삶은 실패처럼 취급된다. 이런 사회에서 유아 영어 사교육은 하나의 상징이다. 그것은 영어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어린 나이부터 인간을 경쟁의 도구로 바라보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아이들은 미래의 수험생이 아니다. 미래의 취업 준비생도 아니다. 미래의 성공 상품도 아니다. 아이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너무 오랫동안 그 사실을 잊고 살아왔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담보 잡힌 인생은 결코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없다. 그래서 이런 동영상을 볼 때마다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진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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