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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의 이런 불안 심리를 반영하듯 서점가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경제교육 동화’, ‘처음 만나는 금융 동화’ 같은 문구를 내건 어린이용 경제·금융서들이 즐비하다. 올해에만 <아홉살 돈 습관 사전 세트: 생활편+학습편―초등 어린이가 꼭 알아야 할 54가지 돈 이야기>(다산에듀), <어린이 첫 투자 수업>(주니어김영사), <장난감 말고 주식 사 주세요!: 어린이를 위한 착하고 바른 투자>(우리학교) 등이 나왔다. 책뿐 아니라 놀이를 통해 경제와 금융을 배우도록 하는 보드게임 등 자료와 교구들도 다양하다.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아무것도 모르고 성인이 되어 월급을 받은 뒤 무지한 상태로 위험하게 투자하는 것보다 청소년기에 투자의 양면성을 알게 해주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과거엔 주식이 도박인 것처럼 가르쳤지만, 그렇게 주식이 나쁘다는 관념만 심어준다면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건전한 주식시장이 형성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부 교사·부모가 개인적인 커리큘럼으로 가르칠 게 아니라 공교육에서 검증된 과정으로 제대로 금융교육을 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유럽 국가들은 아이들에게 일찌감치 시장경제를 알려주고 교실에서 모의 단체교섭도 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가르치지만, 우리에게 지금껏 그런 교육이 없다 보니 성인이 됐을 때 알바를 해도 임금을 떼이고 주휴수당이 뭔지도 모르게 아이들을 길렀다”며 “이제는 합리적으로 접근할 때”라고 말했다.상당수 부모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경제 흐름 속에서 자녀에게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고 혼란스럽다고 말한다. 2살, 6살 자녀를 기르는 30대 직장인 김가영(가명)씨는 첫아이가 갓난아기였던 5년 전만 해도 엄마들 사이에 아기 이름의 은행 계좌 만들기가 유행이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그땐 아들 계좌에 ‘사랑해’ 1만원, ‘너의 세뱃돈이야’ 10만원, 이런 식으로 엄마가 저축해주는 붐이 있었다. 애가 세살 때까지 해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자도 붙지 않고 이걸 왜 했나 싶다. 현명한 엄마들은 그때 주식을 사줬을 것”이라며 뒤처지는 듯한 불안감을 느낀다고 했다. 김씨는 “지금 아이들의 주식 계좌를 안 만들면 나중에 아이에게 미안해질 것만 같다. 그런데 막상 주식 계좌를 만들어서 자산을 불려주려니 공부해야 할 게 너무 많고 투자한 종목이 오르내리면 스트레스가 쌓여 쉽지가 않다”고 했다.
개인의 자산 증식만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정답인 듯 이야기하고, 의사결정만 잘하면 개인의 노력에 따라 누구나 부의 증식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구조적 문제를 볼 수 없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영섭 ‘세상을 바꾸는 금융연구소’ 소장은 “자산시장의 극심한 불균형 속에서 평범한 시민들이 각자 생존전략을 펴는 것인데, 자산 폭등 시대에 지금 아동·청소년기 자녀를 기르는 부모 세대가 희망을 찾지 못하다 보니 벌어지는 현상”이라며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개인이 자산 증식을 통해 알아서 각자 살아남으라는 생존경쟁 명령이 젊은 부모 세대에게 강요되고 있다”고 풀이했다.한 소장은 “아동·청소년기에 시장경제의 순기능만 배울 경우 성인이 됐을 때 빈곤이나 불평등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를 자산을 쌓지 못한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보게 될 위험성이 있다.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자본주의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인식하도록 하고, 시장경제뿐만 아니라 국가의 역할도 함께 이야기하며 균형 있는 관점을 갖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선택지 없는 세상, 개별 생존전략만”
금융감독원이 만든 어린이 보드게임 ‘모을까? 불릴까? 금융탐험대’ 놀이.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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